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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오경상(吳敬常)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81(정조 5)∼1862(철종 13)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일명 도충(道忠)이라고도 부르며 자는 군서(君瑞), 호는 지당(芝堂)이다.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전사한 좌윤(左尹) 오응정(吳應鼎)의 후손이며, 회인 죽계구로(竹溪九老)의 1인이다.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3세에 천자문(千字文)을 배웠으며, 10세에 경서를 통달하였고, 13세에 과문(科文)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평소에 지필묵(紙筆墨)과 서책을 항상 곁에 지니고 다니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흥이 나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본래 경상도 상주(尙州)에서 나고 자랐으며 회인 서면 명곡리(鳴谷里: 지금의 회인면 용곡 3리)로 이거하여 살다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곳에 장사지내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화전을 개간하며 어리석어 문자를 알지 못하였는데 그가 그들을 달래어 배우게 하자 고을 내 다른 마을 젊은이들도 찾아와 같이 배웠다. 당시 고을 안에는 그를 포함해 오종화(吳鐘華), 유병열(柳秉烈), 윤홍재(尹弘載), 이락(李洛) 등 팔문장(八文章)이 있었는데 그 중에 그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1862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저서로 '지당유고(芝堂遺稿)'가 있다.

키워드 해주오씨, 도충, 지당, 회인 죽계구로, 지당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