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박인영(朴仁榮)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81(정조 5)∼1851(철종 2)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영수(永壽)이다. 증조는 박흠(朴欽), 할아버지는 습열재(習悅齋) 박성순(朴性淳), 아버지는 박경신(朴慶新),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여용(金汝用)의 딸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위고 계모를 섬김에 그 마음을 매우 기쁘게 해드렸다고 한다. 7, 8세이 이미 학문을 좋아해 누가 독려하지 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인과 같이 공부하여 할아버지 습열재 박성순이 기특해 하며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이다.”라며 아꼈다고 한다.

성품이 중후하여 비록 집안의 하인에게라도 빠른 말과 급한 안색이 없어 주위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활불군자(活佛君子)”라고 하였고, 여러 동생과 우애가 돈독하였고 평생을 학문을 업으로 삼아 살았으며 욕심이 없었다. 또한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 “차라리 다른 사람이 나를 등지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을 등지지 않겠다.”라고 말하니 그를 알건 모르건 마음속으로 기쁘게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효행과 학행으로 향천(鄕薦)을 받았으나 끝내 평생 포의(布衣)로 살다가 1851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워드 영해박씨, 영수, 활불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