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보기

명칭 박재신(朴在新)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74(영조 50)∼1830(순조 30)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재민(在民)이다. 습열재(習悅齋) 박성순(朴性淳)의 둘째 아들로 대대로 회인 눌곡리에 살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재(文才)가 있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났다. 학문을 숭상하는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특히 시부(詩賦)를 잘 지어 그가 1편을 내 놓으면 고을에서 외워 전했다고 한다. 그의 형 박경신(朴慶新)과 사촌동생 박명신(朴命新) 모두 고을에서 학문으로 이름이 나 선비들의 사표가 되었다. 효행과 학문으로 여러 차례 고을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가르쳐 수많은 문인(門人)을 배출하였다. 같은 고을에 사는 양종대(梁鍾大)와 도의로써 사귀었으며, 습열재 박성순이 세운 운교서당(雲郊書堂)에서 같이 공부한 사촌동생 박명신, 조카 박인영(朴仁榮, 박경신의 아들), 양종대와 함께 ‘운당사군자(雲堂四君子)’라고 불렸다.

키워드 영해박씨, 재민, 회인 눌곡리, 운당사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