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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제경욱(諸景彧)
분류 무신
시대/생몰년 1760(영조 36)∼1812(순조 12)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경식(敬植),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성주목사 제말(諸沫)의 후손이며, 고조는 주부(主簿) 제여회(諸汝恢), 증조는 통덕랑 제명옥(諸命珏), 할아버지는 통덕랑 제현태(諸顯泰), 아버지는 제상부(諸祥富), 어머니는 신평신씨(平山申氏)로 신대현(申大賢)의 딸이다. 1760년(영조 36) 외가인 영남 진주(晉州)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로 통덕랑 김후정(金厚鼎)의 딸이다.

1792년 장용위(壯勇衛)를 거쳐 1795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798년 훈련원 주부에 승진하였다. 이후 운총만호(雲寵萬戶), 해서우후(海西虞侯), 호군(護軍), 오위장(五衛將), 우림장(羽林將) 등을 역임했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출전하여 청북소모장(淸北召募將), 신도첨사(薪島僉使) 등에 제수되었다. 1812년 정주성에 이르러 선봉으로 남문을 공격할 때 홍경래군의 일제 사격으로 전사하였다.

후에 삼도수군통제사에 추증되고 정려를 명하였다. 난이 평정된 날에 칠의사사(七義士祠)의 단을 쌓아 제사 지내졌으며 1815년 정주의 오봉산(五峯山)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제향되었다. 이때 현판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묘소는 마로면 세중리에 있다.

키워드 철원제씨, 경식, 충양, 홍경래난, 표절사, 마로면 세중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