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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열기(裂起)
분류 무인
시대/생몰년 7세기 후반
형태
언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신라 문무왕 때의 장군으로 삼년산군(지금의 보은)의 태수를 지낸 인물이다. 사찬(沙湌)을 지냈으며, 역사서에 기록된 최초의 보은군 행정 책임자이다. 661년(문무왕 1)에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고구려의 서울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군량이 떨어져 신라에 요청하자 문무왕이 대각간(大角干) 김유신(金庾信)을 시켜 쌀 4천 석과 벼 2만 2천2백50석을 당군에게 보급하려 하였으나 고구려군의 습격을 받기 쉬워 더 전진할 수가 없어 편지를 보내고자 하였다. 이때 보기감(步騎監)으로 있던 열기가 자원하여 편지를 전달하는 공을 세워 김유신이 급찬 관등을 주었고, 서울로 돌아와 사찬(沙湌)의 지위를 추가하였다. 그 후 김유신의 아들 삼광(三光)이 정권을 잡았을 때 열기가 군수(郡守)의 직을 구하였으나 삼광은 허락하지 않자, 기원사(祇園寺)의 승려인 순경(順憬)에게 “나의 공이 큰데 군수를 청하여 못 얻었으니 삼광이 제 아비가 죽었다 하여 나를 잊은 것인가”라고 하니 순경이 삼광을 설득하여 마침내 삼년산군(三年山郡) 태수(太守)가 되었다.

키워드 열기, 삼년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