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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이홍연(李弘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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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신 |
시대/생몰년 | 1604(선조 37)~1683년(숙종 9) |
형태 | |
언어 | 한국어 |
지역 | 청주 |
자료출처 | 청원군지 |
조선조 문신. 본관 한산. 자 정백(靜伯), 호 삼죽(三竹), 아명은 이정(而靜). 부친은 대사간 덕수(德洙),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조희일(趙希逸)․정홍명(鄭弘溟)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 의금부도사가 되고 1636년 세마를 거쳐 시직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세자를 남한산성에 호종하였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간이 되어 조의(朝議)를 뿌리치고 조석윤(趙錫胤)과 함께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여 갑자기 귀양가게 하였다.
1649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효종 즉위 후 좌승지․황해감사․대사간․예조참의․병조참의․형조참의 등을 두루 거쳐 호조참판․도승지에 올랐다. 이해 김수항(金壽恒)을 변호하다가 삭직, 이듬해 다시 서용되었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지방관으로 나가 회양부사, 서천군수를 지냈다. 1670년 충청도관찰사, 1672년 대사간, 호조참의, 승지를 역임하였다. 1680년 의금부 당상관으로 경신대출척의 옥사를 다스려 허목 등의 남인을 숙청하였다. 그 뒤 다시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를 지내고 좌참찬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키워드 | 한산이씨, 조선 중기 문신, 경신대출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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