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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우택정(禹宅鼎)
분류 학자
시대/생몰년 1708(숙종 34)∼1793(정조 17)
형태
언어 한국어
지역 보은
자료출처 보은군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화중(和仲), 호는 봉곡(蓬谷)이다. 역동(易東) 우탁(禹倬)의 후손이며, 단양우씨 회인 입향조 우세문(禹世文)의 5세손이다. 인산(仁山, 회인) 6처사의 1명이다.

타고난 자질이 도를 가까이하고 효도와 우애가 남달랐다. 또한 재주가 민첩하여 경사에 밝고 성리지학에 달통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스승을 찾아가 배울 수 없었으나 고을에 이름난 선비가 있다면 찾아가 묻고 배웠으며, 스스로 독서하여 학문을 대성하여 고을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만년에 “모산초당(茅山草堂)”을 짓고 향리의 후학들을 가르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또한 새로 현감으로 오는 이들이 반드시 찾아와 스승의 예로 대우했으며, 그의 덕화로 고을의 문흥(文興)이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인산부자(仁山夫子 : 회인의 공자)’라고 불렀다 한다.

1757년(영조 33) 회인에 7년간 흉년이 들어 황폐하게 되자 영조(英祖)가 안집어사(安集御使)를 파견하여 백성을 구휼하였는데, 이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려 고을 내 선비 몇 명이 상경하여 임금을 배알할 때 그가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17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후사를 이을 자손이 없어 외손(外孫)인 최씨 집안에서 제사를 지냈다. 집안에 고문서와 그의 평생 저술이 있었으나 모두 잃어버려, 최씨 집안에 있던 약간의 시문과 고을에 전하는 그에 대한 일들을 모아 기록한 '봉곡유고(蓬谷遺稿)'가 있다.

키워드 단양우씨, 봉곡, 인산6처사, 봉곡유고